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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緣2 - 나를 찾아 떠나는 과거 여행
  글쓴이 : 김용규 (116.♡.7.31)     날짜 : 16-03-31 23:44     조회 : 843    

오늘 낮 20년 전 내가 직장인이었을 때 만났던 인연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반듯한 옷차림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의 인상은 여전했습니다. 편한 복장을 입었을 뿐, 단정하게 쳐낸 옆머리에 가지런히 정리된 머리모양은 지금도 그대로였습니다. 그래도 세월은 녹아 있었습니다. 얼굴과 몸에는 살이 많이 붙었고 머리카락은 여기저기 희끗희끗해 있었습니다. 나도 그도 단박에 서로를 알아보았습니다. 반가웠습니다.

 

함께 낮술을 하며 그가 품고 왔다는 질문에 대해 길게 나누고 싶었지만, 어제서야 기억해낸 오늘 오후 나의 강연 일정 때문에 나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미리 얘기하지 못한 일정이 있어 시간이 많지 않다는 설명을 하고 곧장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밥을 주문하자마자 그는 일목요연하게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여전했습니다. 내 기억에 그는 정말 성실한 사람이었고 예의바른 사람이었습니다. 그 기억 그대로 자신이 품고 온 고민과 관련하여 첫째, 둘째, 셋째, 손을 꼽아가며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근황은 이렇습니다. 몸담고 있던 회사가 오래전 구조조정을 했습니다. 그때 나는 살아남았습니다. 기업사냥꾼 같은 사람이 대표로 오면서 회사는 더 망가졌고 대기업에 인수합병 되었습니다.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나의 지위는 바뀌어 그 회사의 하청업체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연봉은 50% 가까이 줄었고 신분은 계약직으로 달라졌습니다. 사무직에서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현장직으로 업무도 바꾸게 되었습니다. 양복을 입고 출근하던 나는 하루아침에 회사가 지급하는 유니폼을 입고 지붕을 오르내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최근 몇 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3개월 내에 회사를 떠나라는 요구를 받아두고 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오늘 약속을 잡던 그날 이후 나는 여러 곳에 이력서를 냈습니다. 다행이 어제 한 곳에서 출근을 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1년 계약직으로. 이렇게 사는 게 정말 사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 소문을 들은 적 있었는데 얼마 전 한 방송 프로에서 보고 수소문해서 연락한 것입니다. 질문은 이렇습니다. 첫째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할 때 두렵지 않았습니까? 확신했나요? 어떤 확신이 있었기에 그렇게 떠날 수 있었나요? 계획한대로 이루어지던가요? 둘째 아내와 아이들은 어떻게 설득했나요? 셋째 외부의 시선은 어떻게 감당했나요?’

 

나는 대답했습니다. ‘질문이 구체적이어서 좋군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문이 모호한 상태로 찾아오는데. 첫째와 둘째 질문은 이해가 되는데 마지막 질문은 무슨 뜻인가요? 그것부터 정리하고 한꺼번에 대답해드리지요.’ 그가 부연했습니다. ‘양복을 입고 출근하던 내가 작업복 유니폼을 입고 출근하던 날 나는 미칠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었어요. 새로운 일을 찾아 시작하면 명함에 뭐라고 새기든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사람들은 나를 초라하게 여길 거예요. 그 시선들을 어떻게 감당했냐는 뜻입니다.’

설명을 들으며 나는 가만히 미소를 지었습니다. 순서대로 질문에 답했습니다. ‘첫째,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었습니다. 설레는 게 먼저였습니다. 나는 살고 싶은 삶을 향해 떠난 사람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지요.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겼는데 두려운 마음이 먼저 들던가요? 설레서 속수무책 끌려가는 게 정상이죠. 확신이 있었냐고요? 천만에요. 내 마음 빼앗은 그 사람이 내 사람이 될 거란 확신이 처음부터 있던가요? 정말 좋아하면 계산은 나중에야 생기죠. 계획한대로 이루어졌냐고요? 아니요. 계획보다 훌륭한 결과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살아보니 알겠더군요. 계획이 실패한 그 지점에서 겪었던 고통의 시간이 계획보다 훌륭한 새로운 결과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외부의 시선, 이건 주로 나를 주인으로 삼지 못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예요. 진달래 군락 입구에 피는 개나리가 진달래색이 아니라고 제 노란빛을 부끄러워할까요? 세상이 오염시켜 놓은 눈을 찌르세요. 내 본래의 눈으로 나와 세상을 보세요. 나라고 믿는 내가 실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나라는 사실을 알아채세요. 세상은 우리를 그렇게 조작했어요. 내가 보기에는 세상이 비정상이에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오직 승자와 패자의 구도로 사람들을 분류하고 취급하는 세상이 비정상이라고요. 세상을 바꾸는 게 맞아요. 그러기에 앞서 나를 먼저 교정해야지요. 남은 인생도 대략 40년 가까울 텐데, 그 인생을 그 구도에 맞춰서 살다가 갈 거예요? 세상의 기준을 주인으로 섬기는 노예처럼 살다가 가야 하는 게 인생이 맞는다고 여기세요?’

 

시간을 참 알뜰하게 썼습니다. 작별하고 강연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신호등에 서서 목적지를 검색하며 다시 보니 강연 시간을 잘못 알았습니다. 한 시간 뒤에 출발해도 될 시간이었습니다. 연락을 취하자 그는 여전히 그 의자에 머물러 생각 중이라 했습니다. 차를 돌려 다시 그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또 질문이 이어졌지만 본질은 같았습니다. 그는 두려워하고 있었고 세상이 만들어준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권했습니다. ‘지금 당신의 시선은 본래 당신의 것입니까? 아니면 부모님과 학교와 지역사회와 직장과 세상을 거쳐 오며 맺은 무수한 인연들이 만든 시선입니까? 알았으면 그 연()부터 정리해 보세요. 과거로 여행을 떠나보세요. 나는 그 여행을 통해 나의 눈을 찾았어요. 거기에서 출발했어요. 나를 찾아 떠나는 과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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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 출간 알림  

겨우내 매만져 새 책 한 권을 펴냈습니다. 숲으로 떠나와 10년 간 써온 글 중 최근 5년의 글을 다시 써서 만든 책입니다. 나의 졸저가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기를 바랍니다.

http://www.yes24.com/24/goods/25250996 <당신이 숲으로 와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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