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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야 할 스승, 피하고 싶은 제자 2
  글쓴이 : 김용규 (116.♡.7.31)     날짜 : 17-01-27 01:33     조회 : 360    

 

지난 주 편지에 쓴 표현처럼 도사부의 테니스는 훌륭하게 연주되는 음악처럼 아름답고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스럽습니다. 내 강의를 듣고 내 책을 읽고 난 뒤, 도사부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시간되면 코트에서 한 번 볼까요?” 나는 열일을 젖히고 코트로 나갔습니다. 그 만추의 주말 새벽, 운이 좋게도 나는 그와 단둘이 클레이 코트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안개가 걷히는 사이로 햇살은 서서히 스몄고 이윽고 내내 새소리는 찬란했습니다.

 

도사부는 공을 담은 카트를 손수 밀어 네트 앞에 섰습니다. 나는 당연히 네트 건너편으로 가서 섰습니다. 그는 여느 테니스 선배들과는 달리 나를 자기가 서 있는 곳으로 건너오라고 했습니다. 보통은 네트 건너편에 두고 공을 던져주며 요령을 가르치는데 그는 자기 앞으로 가까이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속삭이듯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느끼는 게 먼저예요. 몸과 라켓과 공을 느껴보세요. 자 보세요.” 그리고는 공 세 개를 한 손에 쥐고 먼저 베이스 라인 근처에 한 개를 튀겨 튀어 오르는 공을 포핸드로 가볍게 툭 쳐서 네트를 넘겼습니다. 공은 네트 위를 아슬아슬하게 넘어가 반대 편 코트의 베이스라인 근처에 떨어졌다가 튀어 오르며 뒤편 철망에 촤악- 소리를 내며 부딪쳤습니다. 연달아 빠르게 앞으로 몸을 움직이더니 다시 서비스 라인 근처에서 또 한 개의 공을 바닥에 튀긴 뒤 튀어 오르는 공을 백핸드로 툭 쳐서 네트를 넘겼습니다. 공은 조금 전과 같은 높이로 네트를 넘어 비슷한 궤적으로 소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몸을 움직이며 다가와 네트 근처바닥에 남은 하나의 공을 튀긴 뒤 다시 빠르게 포핸드로 툭 쳐서 똑같이 네트를 넘겼는데 그 공 역시 이전의 것들과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소리와 함께 소멸했습니다. 세 개의 동작은 물처럼 흘렀습니다. 부자연스러움이 한 점도 없었습니다. “한 번 해보세요. 공을 휘감아 넘기는 거예요. 몸과 라켓과 공을 느껴보세요.”

 

나는 서너 번 그 동작을 따라해 보았습니다. 네트에서 가장 먼 베이스라인 근처에서는 정확했으나 네트에 점점 가까워 올수록 네트에 걸리거나 반대편 베이스라인을 벗어나 떨어졌습니다. 실전이라면 실점을 하는 경우인 것이지요. 도사부는 다시 시범을 보였습니다. “내가 해줄 수가 없어요. 느껴야 해요. 나의 발을 봐요. 보법을 어떻게 쓰는지. 나의 허리와 팔과 손을 봐요. 어떤 리듬으로 공과 마주하는지.” 나는 다시 시범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말없이 온화한 표정으로 시범을 보였습니다. 내가 따라했습니다. 몇 번을 반복했습니다. 될 때도 있었고 안 될 때도 있었습니다. 내가 다시 반복하려 하자 그는 나를 멈추게 했습니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깊게 심호흡을 했습니다. 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나 역시 도사부를 따라 심호흡을 했습니다. 그렇게 호흡하고 반복하고 다시 호흡하고 또 반복하기를 몇 번, 드디어 나는 9할 이상을 성공하고 있는 나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도사부는 건설현장에서 특수장비를 운전하는 직업을 가졌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쉬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비 오는 어느 날 우리는 실내코트를 찾았습니다. 도사부는 그날 내게 뭘 배우고 싶은가 물었습니다. 나는 서비스를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번에도 특별했습니다. 공 하나를 들고 저쪽으로 공을 던져보라고 했습니다. 아주 가볍게, 그리고 부드럽게. 나는 시키는 대로 몇 번 반복해보았습니다. 가까이 오라고 하더니 볼을 던질 때 손에서 볼을 놓기 직전의 위치에서 멈춰보라고 했습니다. 팔을 하늘로 곧게 뻗어 올려 볼을 던지기 직전 나는 손을 멈추었습니다. “거기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라켓과 볼이 만나는 겁니다. 그런데 당신은 팔이 하늘로 올라가다가 만나고 있어요. 그 문제를 극복해야 할 겁니다.” 나는 몇 번 반복해서 서비스를 해보았고 금방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비스 자세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백핸드 자세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원리를 터득하고 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처럼 해봐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는 배울 수 있는 것이 없다. 오직 나와 함께 해보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만이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있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한 말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는 모두 저마다 자기이기 때문인 것이지요. 따라서 자기를 버리고 를 따라해 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피해야 하는 스승입니다. ‘자기에게는 각각 특이점이 있으므로 그 특이점을 가진 자기가 자기만의 리듬을 가지고 공과 마주해야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테니스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도사부는 그래서 내게 느끼는 게 먼저입니다.”라고 말한 것이지요. 이번 주도 피해야 할 제자 이야기는 매듭을 짓지 못하네요. 다음 주에 이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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