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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하고 싶은 제자
  글쓴이 : 김용규 (116.♡.7.31)     날짜 : 17-02-02 17:17     조회 : 615    

 

지난주 까지 피하고 싶은 스승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제자가 가진 개별적이고 고유한 역량이 발현되도록 돕기보다 나처럼 해보라고 하는 스승이 가장 피해야 할 스승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스승 입장에서 피하고 싶은 제자도 있을까요?

 

일찍이 맹자(孟子)는 영재를 만나 그를 교육하는 것이 군자의 세 가지 기쁨 중 하나라 했습니다. 맹자(孟子)》 〈진심상편(盡心上篇)의 원문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君子有三樂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而王天下不與存焉 천하의 왕이 되는 것은 여기에 끼지 못한다.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부모가 살아계시고 형제들이 무고한 것이 첫째 즐거움이요,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요

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영재를 다른 표현으로 우수한 아이라고 합니다. 지식산업사회의 틀 속에 머물렀던 예전에는 영재를 머리가 비상한 아이정도로 보았으나 요즘은 세상이 다양화되면서 문화나 예술, 체육의 잠재력이 특출한 아이들을 또한 그 분야의 영재로 보는 듯합니다. 각 급 학교의 교문에 이따금 걸리는 현수막에도 이런 현상이 반영되는 것 같습니다. 3학년 ○○○ 서울대 법학과 합격, 2학년 ○○○ 전국 씨름대회 준우승. 이런 걸 보면 공부 영역에서 예체능 영역으로 분야는 다양해 졌으나 본질적으로 다른 이들에 비해 우수한 아이를 영재라고 보는 무의식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듯합니다.

 

나는 영재에 대한 견해가 상당히 다릅니다. 내가 제자로 만나고 싶은 이 시대의 영재는 대략 이렇습니다. 무엇보다 기쁘게 해나가는 제자, 그리고 끝없이 성찰하고 자각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제자, 제 삶의 주인 자리를 찾으려 애쓰는 제자, 마지막으로 깊게 질문할 줄 아는 제자. 이런 제자가 좋은 제자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비유해 보면, 나는 시종일관 테니스를 진심으로 기쁘게 배우고 익혀가는 중입니다. 스승이 힘에 부칠 만큼 강도를 높여 헉헉댈 때도 나는 열개만 더!’를 외치는 제자입니다. 심지어 던져주는 연습용 공을 다 치고 나서 여기저기 흩어진 공을 주워서 공 바구니에 담을 때도 나는 기쁘게 공을 모으는 제자였습니다. 테니스를 익혀가는 과정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즐겁게 익혀가는 제자를 만나는 것은 스승 입장에서 큰 기쁨일 것입니다. 다음으로 나는 끝없이 성찰하고 자각하려고 애쓰며 배웁니다. 내가 좋아하는 세계적 테니스 선수인 로저 페더러나 샤라 포바, 케르버 같은 선수들의 자세를 보며 내 자세에 무엇이 문제인지를 자주 성찰합니다. 프랑스 최고의 선수 머레이나 여러 선수들이 그렇듯 나도 경기 중에 홀로 자주 중얼거리는 편입니다. 금방 한 실수에 대해 자각하고 스스로에게 극복할 것을 요구하는 중얼거림인 것이지요. 또한 나는 테니라는 운동이 내게 무엇인지를 놓치지 않으려 애씁니다. 내게 그것은 선수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게 살아있는 기쁨이고 내 몸을 사랑하는 방편이며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장임을 잊지 않습니다. 수단과 목적을 뒤바꾸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자주 진지하게 묻습니다. 내 발리 플레이는 왜 저렇게 간결하고 정확하지 못할까? 내 백핸드는 왜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걸까? 스스로에게도 묻고 스승에게도 묻습니다.

 

이야기가 좀 길었습니다. 요컨대 내가 생각하는 피하고 싶은 제자는 저 네 가지를 하지 않는 제자입니다. 그 중 최악을 꼽으라면 그것은 묻지 않는 제자입니다. 한편 나의 스승, 구본형 선생님께서는 가장 피하고 싶은 제자를 스승을 영원히 빛나게 하는 사람이라 하셨습니다. 아마 상통할 것입니다. 공부해 나가면서 스스로 질문하지 않는 자는 누군가를 외우고 따라하는 데 급급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니까요. 그는 영원히 스승을 빛나게 할 뿐 자신을 빛나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스승의 가장 큰 기쁨은 누군가에게 그가 나의 제자라고 말하는 것 아닐까요?



허혜정 (61.♡.148.165)   17-03-14 21:12
기쁘게 해나가는 제자...라는 표현이 와닿습니다~ 뭐든 기쁘게 할 수 있는 삶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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