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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춘기와 갱년기
  글쓴이 : 김용규 (116.♡.7.31)     날짜 : 17-03-16 23:26     조회 : 658    

 

오늘은 본격 이야기에 앞서 고백 하나 해야겠습니다. 지난 주 글을 보내지 못한 이유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확실히 나의 몸과 마음은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뚝심 있게 앉아 글을 읽는 것이 버거워졌습니다. 두세 시간 앉아서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는 일도 전에 없이 힘겹습니다. 등이 아프고 이따금 멀미가 나는 증상을 겪는 날이 종종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마음의 열정 또한 예전 같지 않습니다. 많은 일에 부질없다는 생각이 자주 일어서서 무엇인가에 다가서려던 나를 멈추게 합니다. 몸 감각이 더욱 예민해진 것 같고 사태와 사물을 대하는 마음 또한 더없이 민감해진 것을 느낍니다. 이런 변화가 낯설고 당황스럽고 더러 두렵기까지 한 날 있습니다. 글쎄요, 합쳐서 남자의 갱년기 증상이라고 하면 정확할까요?

 

초록의 여름처럼 창창했던 몸과 마음이 때가 되어 이런 낯선 변화를 만났을 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모든 증상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나온 사춘기를 기억하시지요? 세상이나 주변과 불화를 겪지 않던 발랄하거나 순하던 아이가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역정을 내고 토라지고 더러 공격성을 드러내는 변화, 이름 하여 질풍노도의 시기. 그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인생에서 제법 긴 시간 자기 자신 때문에 겪는 예민한 불화의 날들은 일반적으로 사라집니다. 그러다가 지금의 내가 겪는 것 같은 증상을 다시 겪게 되는 때가 오는 법이지요. 물론 사람에 따라 그 증상의 경중은 다릅니다.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사춘기를 없는 듯 넘어간 사람도 있지요. 갱년의 증상 역시 그러할 것입니다. 다만 기억해두기 바라는 것은 가볍든 무겁든 삶에서 겪는 이런 시간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아마도 몸과 마음의 성장 혹은 성숙이 균형을 잃을 때 찾아오는 것이리라 짐작합니다. 사춘기란 몸의 성장 혹은 성숙 속도가 마음의 그것을 앞지르는 때, 마음이 몸의 성숙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부조화를 겪는다는 것이지요. 초경을 하거나 몽정을 시작하는 몸의 변화, 자연스레 이성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는데 어떻게 그 열망을 표출하고 다루어야 할지 마음은 준비되지 않은 시간, 주변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어린 나로만 대하고 있고 나는 나의 세계를 완성하지 못한 상태여서 존중받기가 어려운 때, 많은 것이 곤란하고 혼란스럽습니다. 몸의 변화를 마음이 따라잡으며 그 시간을 벗어나면서 우리는 몸의 주체가 되고 분명한 자기 세계를 갖게 되지요. 일을 하고 연애를 하고 자식을 낳고 무언가를 추구하여 이뤄가면서 자신을 책임져 가는 시간. 경험해 보니 대략 십대 후반부터 그렇게 사십대 후반까지 삼십여 년을 몸과 마음의 불일치 없이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불일치의 시간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때가 바로 지금의 내 시간, 갱년의 때일 것입니다.

 

갱년기 몸과 마음의 불일치는 사춘기와 반대로 성숙한 마음을 몸이 따라주지 않는 데서 출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푸르렀던 날에는 다가섰던 많은 것에 대하여 서툴렀던 것들을 이제는 노련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점점 다가갈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드는 데서 오는 쓸쓸함. 제법 깊어졌는데 그 깊어진 마음을 발휘할 일상 자체가 점점 사라져가는 느낌. 예컨대 사랑의 기술이 충분히 농익었는데 정작 농익은 기술을 나눌 대상이 멀어지는 경험이랄까요? 이를테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경험과 사유가 풍부해져 있는데 정작 대화를 나눠줄 대상들은 내 외곽을 떠돌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또 다른 예로 이제 읽으면 척척 이해가 가고 농익은 사유와 결합하여 더 깊은 관점의 책을 내놓을 자신이 서는데 정작 책을 읽기에 너무 불편한 노안이 찾아오는 것 같다고 할까요? 요컨대 사춘기의 그것이 성숙해 가는 몸을 마음이 따라잡지 못한 데서 맞이한 불화라 한다면 갱년기의 그것은 성숙해진 마음을 몸이 소외시켜 겪게 되는 불화라 하겠습니다. 사춘기 때는 미숙한 마음이 몸의 소리를 가로막았다면 갱년기의 때에는 쇠잔해가는 몸이 농익은 마음의 소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불화의 국면을 조화의 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요? 다음 주에 또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둘러 만나고 싶다면 이번 주말 여우숲 인문학 공부모임에서 뵈어도 좋겠고요.(여우숲 홈페이지www.foxforest.kr 여우숲 소식 코너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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