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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라리 굶기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
  글쓴이 : 김용규 (223.♡.178.60)     날짜 : 17-06-08 23:54     조회 : 899    

 

지난 주말 지리산에서 30년간 차를 덖으며 살다가 세상으로 내려오신 분과 여우숲 사무실에서 마주앉았습니다. 흰빛 삼베 저고리 위에 쪽빛 고운 물을 들인 조끼를 입고 있었고 머리는 백호를 쳐 두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 외양으로 앉은 자태에서는 맑고 선명한 내면의 기운이 자연스레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그 여성분은 어떤 신념을 품고 스물한 살에 머리를 깎았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머리를 기르지 않고 사는 이유는 아직 그 신념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분은 봉투에서 서류 뭉치 비슷한 것을 꺼내어 내게 건넸습니다. 손으로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그 그림 안에 당신의 신념이 아름답게 형상화 돼 있었습니다. 보자마자 빨려들었고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 아름답다!’

우리는 동이 터올 때까지 끊이지 않고 수다를 떨었습니다. 각자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난 뒤 일행 모두가 모여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2년 넘도록 여우숲의 고된 살림을 버텨내고 계신 하영옥 실장님이 손수 차린 정성어린 밥상 앞에서 기쁘고 맛있게 밥을 나누며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님이라 부르는 그분은 자연의 치유력으로 망가진 사람의 몸을 되돌려 놓는 일을 하며 현대인을 치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당신이 어려서 잘못된 음식을 먹다가 치명적 위기를 경험한 뒤부터 그릇되게 먹고 입고 머무는 것을 바꿔 참되게 먹고 입고 머무는 것으로 삶을 살리는 것을 전파하는 것에 생을 쏟아오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공부하고 또 체득하며 얻어낸 깊은 지혜의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그중 며칠 동안 계속 떠나지 않고 내 마음에 머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차라리 굶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저 허기를 채우기 위해 좋지 않은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느니, 그리하여 점점 자신의 몸에 독을 쌓고 궁극적으로 몸이 제 균형을 잃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느니 차라리 굶기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는 말씀이 어느 이야기 중에 무심히 내게로 던져진 것입니다.

 

개와 오래 살았으니 개가 굶는 모습을 본 적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고 생각해 보니 개들은 몸이 보내는 신호에 화답하여 때로 스스로 굶기를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이따금 주는 사료나 밥을 거부하고 몇 끼를 굶다가 풀을 뜯어 먹은 뒤 게워내어 자신의 속을 모두 비우는 경우도 종종 보았습니다.

 

차라리 굶기를 선택하는 용기에 대해 주신 그분의 말씀은 내게로 다가와 비단 음식을 굶는 것에 대한 사유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확장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때로 글을 쓰는 것도 굶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쓰레기 같은 글을 세상에 내놓기보다 몇 날의 단식처럼 잠시 글쓰기를 멈추는 것이 필요하지. 마찬가지 너무 읽어 지나친 지식에 갇히느니 책읽기를 잠시 멈추는 것도 필요하지. 그뿐인가? 탐욕에 눈머느니 돈에 대한 추구를 멈추고 차라리 지독한 가난을 스스로 선택하는 때가 필요하기도 하지. 때로는 뜨거운 몸을 욕망하는 욕망을 멈추고, 더러는 고결한 정신을 욕망하는 욕망을, 말하고픈 욕망을, 그렇게 스스로 굶기를 선택하는 용기가 우리 삶에는 꼭 필요한 법이지.’

 

그것이 무엇이건 욕망의 욕망을 멈추고 차라리 굶기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가장 순결한 자신으로 되돌아가 다시 살아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니까요.

그 특별한 스님은 곧 여우숲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곧 여우숲에서 차라리 굶기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담은 단식 프로그램을 기획해 보자고 합의했습니다. 그대 언제 한 번 굶어보러 오시겠습니까? 욕망하는 욕망을 멈추어 가장 순결한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경험을 가져보시는 프로그램에 당신도 한 번 함께 해 보시겠습니까?


이재군 (182.♡.233.77)   17-07-25 16:40
선생님! 어디 편찮으신 건 아니지요?
글을 굶으신지가 제법 된 듯 하여 다른 사유가 있으신건 아닌가 궁금해집니다.
모쪼록 무더운 폭염과 무서운 수해에 무탈하시기를 바랍니다.
윤선화 (125.♡.191.97)   17-10-13 21:12
오늘 강연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살 많이 빠지신 것 같아서 1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보다, 아니면 지금 무슨 일이 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좋은 강연은 반복해서 들어도 좋다는 것을, 오늘 알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도 김용규님 강연을 듣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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