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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들, 여우숲에서 텃밭을 일구다.
  글쓴이 : 붉은혀 (220.♡.41.157)     날짜 : 15-08-12 16:27     조회 : 277    
최근 소원했던 선배의 제안으로 5월의 훈풍속으로 따라나선 곳은 괴산 칠성의 여우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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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진 꼬불길을 따라 차가 숨이 찰 즈음 덩그마니 나타난 곳은 숲 체험장 여우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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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숲 생태학교장의 배려로 300평의 텃밭을 얻은 선배와 후배 둘은 농사를 짓는다는 것만으로 신이나
 
농기구와 모종을 사서 합류했고. 패션너블한 장화까지 완전 무장한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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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늬 장화를 신고 우리들은 초짜 농군답게 가장 뜨거운 낮시간에 밭을 누비는 용맹을 과시하면서 
 
텃밭에 모종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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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평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 고작 4평 남짓한 공간이 오늘 우리가 작업할 텃밭이다.
 
비탈길, 경사를 이용해 호박을 심는 센스까지 발휘하면서 냄새나는 퇴비도 주변에 뿌려주었다.
 


1시간여 4명의 여성들은 땀을 삐질거리며, 허리가 아프다고, 관절이 시리다고,
 
농사힘들어서 못짓겠다고, 엄살과 푸념을 떨었다. 고랑을 파 두덩을 만들고는 고랑에 모종을
 
심어야 한다고 설왕설래까지 했으니 어찌 이들을 농사꾼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까?
 
허브와 상추, 토마토, 참외, 치커리, 겨자채, 호박들은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
 
한나절같은 고생이었으나 우리가 들인 시간은 대략 1시간 남짓이었다.
 
여우숲학교장 사택 데크에 이동장판을 깔고 깔깔거리며 우리는 농사짓는 시간보다 더 길게
 
텃밭에 대해 이야기 했다. 엽채류분과, 구근류분과, 허브분과, 분과원없는 분과장들을 선출하며
 
그 옛날 여성운동을 조직하듯 우리는 조직했고, 미래설계를 했다.


산골에 안 어울리는 드립커피를 먹어가며 우리는 사뭇 진지했건만 주인장 집을 지키는 산이는 고개돌려
 
능청을 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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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위 나무 사이로 자태를 드러내는 여우숲 본관은 사뭇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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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약간의 채집활동을 통해 먹을거리를 공수했다. 지천에 널린 질경이를 뜯고,
 
그늘아래 아직 새순을 자랑하는 달래 어린 잎을 뜯고 본관으로 올라와 커피숍 야외 테라스에서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처럼 늘어졌다.


여우숲 아래로 미루마을의 붉은 지붕들이 도열해 있다. 57가구가 모여사는 미루마을은 인하대 동문들이
 
동호인 주택처럼 마을을 설계해 만들어진 전원주택단지다.
 

여우숲 커피숍은 개점휴업상태, 그저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의 쉼터역할로 제 소임을 다할 뿐이다.
 
전시용일까. 저 해먹위에서 언젠가 꼭 낮잠을 자보고 말리라

커피숍 테라스 아래에도 넓다란 야외테라스가 있다. 바베큐를 먹고 싶었지만, 우리 일행 중 한명은

 

단식중이고, 두명은 이른바 선택적 베지테리안이다. 다음엔 돼지테리안들과 소주와 삼겹살을

 

먹어야겠다고 굳게 결심하게 만드는 유혹적인 바베큐장.


다음주 토욜을 기약하며 우리는 어두어지기전에 여우숲을 나왔다.

 

여우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 여우 숲은 여우가 없는 숲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숲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을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는 생태학교 여우숲은 내게 텃밭이 있는 공간이고, 오롯이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은밀한 사적 장소이며, 오랜 친구였던 옛날의 동지들과 촌철살인의 냉소를 유머로
 
녹여낼 수 있는 힐링의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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