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여우숲에서 선생님 강의를 들었습니다. 선생님 삶의 역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강의인지라 감명깊었습니다. 별다른 특별한 계기가 없이도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저에게 놀라운 일이기도 했고, 세분의 선각자를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어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 청중이 대부분 여성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 부분의 언설은 작가님에게 아·무·것도 아닌 "아주 사소한 것" 이었는지 모르겠으나 턱 하니 갑자기 걸렸습니다. 부부가 주종관계가 아니라면 말을 듣고 안듣고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을 대화하고 타협해 가는 관계라고 생각하는 데 별 생각없이 말씀하셨겠으나 많은 여성들은 그 단어가 아주 불편했습니다.누구보다도 차별에 대한 민초들의 투쟁을 알고 계신 작가님께서 여성에 대해서는 민감한 감수성을 발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강의에 대한 신뢰 자체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이 됩니다.

2. 반복되는 "집사람"이라는 호칭 역시 듣기가 불편했습니다.

- 제가 어떤 호칭이 좋다고 제언할 수는 없으나 그 호칭이 적절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남녀의 차이가 차별이 되고, 그 차별이 성별역할에 대해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젠더이원체계에 대해 울분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 이러한 불편함은 사회가 구조적으로, 제도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작가님은 부인에 대한 겸손한 표현으로 '집사람'이라는 호칭을 수 십번 사용하셨을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언어에 대해 민감하셔야 하는 작가님께서 아무 생각없이 그 호칭을 남발하셨다면 사실 저는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대중강연을 하시고, 글을 쓰는 작가인 선생님이 강의나 글을 쓰는 행위는 사적인 행위가 아니라 공적인 행위임이 분명하고 또한 많은 영향을 끼칠것이라고 짐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작가님의 언설에서 발견되는 두 가지의 사례는 어떤 의도가 있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약간 경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보다 청중과 소통해야 하고, 애독자들과 소통해야 하는 입장에서 위와 같은 사례는 불통을 만드는 것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 차이가 있는 부인과의 관계를 말씀하시고, 부인을 언급하셨을 때 보였던 진심은 깊은 사랑과 신뢰였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독거노인이 될 자신을 구했다고 하셨고, ppt로 도움을 주시고 있다는 말씀은 부인에 대한 자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작 표현되는 것은 작가님의 의도와 달리, 굉장히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사람이 아닌가 의심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정상적인 남자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무수히 널려있는 우리의 이웃과, 그 중의 절반인 여자사람에게도 사람으로서의 존중이 필요합니다.

익숙한 것은 민감한 감수성을 발현하지 않고서는 습관이라는 이름으로 고정관념을 더욱 공고화하게 됩니다. 최근의 여성혐오의 강화와 성적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우리 사회의 진보가 얼마나 먼 곳에 있는가를 실감하게 합니다.

저는 작가님이  일반 작가들과 다른 생활경험을 가졌다는 것이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비약하거나 과장됨이 없이 담담하게 강의를 해 주셔서 오히려 좋은 강의라 생각했습니다.

혹여 불편하실까, 몇 번을 망설이다가 더 크게 날개를 펴시라고, 이런 생각을 가진 청자도 적지 않음을 알려드리고 싶어 결례를 무릅썼습니다.

그럼,  여우숲의 짙푸렀던 녹음을 담아  김수정 드림

정명섭 작가님의 답신입니다.

메일 내용을 몇 차례 읽어봤습니다. 그리고 우선 말씀드려야 할게 사과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첫번째 내용은 강의 중에 즉흥적으로 나온 농담이었습니다. 하지만 듣는 분들이 불편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집사람이라는 용어에 관해서도 별 뜻 없이 썼던 것인데 생각해보니까 말씀하신대로 부적절한 용어였습니다. 강의에 대해서는 엄청 많은 준비를 했으면서 정작 듣는 분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배려나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보내주신 메일 내용을 읽고 크게 반성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품고 있는 뜻이 아무리 숭고해도 결국 적절한 말을 선택하지 못하면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죠.  이 메일이 아니었다면 저는 성공적인 강의였다고만 생각하고 제 안의 어둠을 계속 가져갔을 겁니다. 용기를 내서 메일을 보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