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들어온지 두달만에 장기간(?) 여행을 다녀왔다.

연휴를 앞두고 손님이 제법 찾는 시점이었지만 내 20대를 온전히 갖다바친 대학 동아리의 동문회 행사를 주관하기 위해서였다.

30대 중반까지 이력서에 동아리단장을 버젓이 기록했었다. 내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수업을 비롯한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졸업을 해서도 후배들을 챙기기 위해 시간만 나면 달려갔었다.

동문회 회장을 십수년을 맡았던것 같다. 하는 일도 없으면서 말이다.

어느듯 입학한지 30주년이 되는 올해에 일을 제대로 벌렸다. 동문음악회를 계획했고 열심히 추진해서 결국 10월3일 경주에서 우리끼리 연주회를 했다.

캐나다에서, 중국에서, 멀리 아프리카에서 동문들이 달려왔고, 국내의 원근각지에서 모여 들었다.

현역들이 없는 상태여서 안타까움이 있는 연주회였지만 모두들 사상 최대의 감동과 희열을 맛보며 밤새, 이튿날 헤어질때까지, 아니 지금도 그 감동에 휩싸여 밴드라는 공간에서 떠날줄을 모른다. 환갑을 바로 눈앞에 둔 초대 선배들도 어린 아이마냥 하루종일 밴드에서 이야기를 한다.

동기들의 지극한 열정과 헌신적인 도움으로 행사를 잘 치루었고, 오랫동안 걸려있던 동문회장이란 직책을 후배에게 넘겼다. 세상의 그 어떤 명예보다 자랑스러웠지만 세상의 모든 직책들을 내려놓겠다고 작정한(?) 나로서는 이것까지도 내려놓고 싶었다.

전혀 무겁지 않은 직책이었지만 사랑하는 후배에게 역할을 넘겼다.

세상의 많은 내려놓음이 아쉬움과 회한 등으로 인해 다소 잡음과 서운함이 있기도 하지만, 난 참 행복하다.

여전히 애써 협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축하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모임, 이런 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자부심은 생명 끝날때까지 이어지리라.

사랑하는 아내와 늦둥이가 와서 축하해 주었으니 학창시절 버킷리스트 중 하나도 실현됐다.

다만 엄청난 감동과 희열에 대한 후유증이 크다. 그것이 달아날까봐 마음 단속하는 것이 힘들 정도이다.

지난 6월 엄청난 시련 앞에서도, 모든 것을 끊고 스스로 아름다운 유배를 자청해 이곳 여우숲에 들어올때도 이렇진 않았는데...

그래도 기쁘다.

그들이 삶의 현장에서 새 힘을 얻어 더 열심히 헌신하며 살 것을 확신하며, 다음 모임 역시 훨씬 더 잘 준비해 성대히 치루어 줄 것을 확신하기에 말이다.

여우숲을 비운 3일, 찾아주신 손님들에게 죄송했지만, 11월부터 합류할 동역자가 지인과 함께 찾아와 남자가 쉽게 보지 못하는 구석구석까지 깨끗하게 정리해 주고 갔다.

대신 나는 여우숲을 충분히 홍보하고 왔으니 본전은 한것 아닐까?

예슬교육이라는 단체가 오늘부터 4일간 이곳에서 캠프를 한다. 그럼에도 난 참 한가롭다. 이젠 적응이 된건가?ㅎㅎㅎ

조용한 이 시간, 내려놓음의 참 의미를 되새김질하며, 그저께의 연주를 생각하며 감상에 젖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