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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의 긍정 2
  글쓴이 : 김용규 (116.♡.7.31)     날짜 : 17-03-03 00:49     조회 : 520    

실패의 긍정 2

 

종아리부분의 근육과 인대 연결부분이 파열되었습니다. 지난해 비슷한 시기에는 왼쪽 종아리의 파열을 경험했는데 이번에는 오른쪽 종아리입니다. 앞으로 최소 4~6주는 지나야 예전에 가까운 상태로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날은 찬란해지는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뭐를 하다가 그랬냐고요? 운동을 하다가 그렇게 됐습니다. 이번 주말에 난생 처음 전국 아마추어 참가 테니스 시합에 출전해 보기로 도사부와 약속을 하고 취약한 플레이 부분을 다른 코치와 집중 훈련해 보다가 벌어진 사태입니다. 소식을 들은 어느 분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고무줄도 오래되면 삭아요. 근육이라고 왜 안 그렇겠어요? 이제 삭은 고무줄 잘 관리해야 돼요. 하하.”

 

발을 딛지 못해서 홀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민폐가 될까 싶어 다른 사람들 운동이 끝날 때까지 코트에 앉아 있었습니다. 조금 아프고 많이 불편했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의 경기를 즐겁게 관람하면서 말입니다. 모두 운동이 끝나고 몇몇이 나를 부축해줘 차에 앉았습니다. 해보니 다행히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밟는 근육에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돌아와 함께 저녁을 먹는데 도사부께서 내게 말했습니다. “정말 대단해요. 내가 그렇게 됐으면 지금쯤 난리가 났을 텐데. 병원 가서 눕고, 가족들 다 올라오고. 내일 따님 입학식에도 못 가게 됐다면서 웃음을 잃지 않고 이 사태를 긍정하는 마음의 힘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와요?” “벌어진 사태를 어쩌겠어요? 안 부러진 게 다행이죠.” 그때 내가 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벗으로부터 사진 한 장을 받았습니다. 어느 대문에 그려진 그림과 글이었습니다. 티베트 속담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진 그 글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멋진 말이죠? 내 긍정의 힘도 티베트인들의 깨달음과 다르지 않은 곳에서 올 겁니다. 아마.

 

나와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 중에 두 젊은 고수가 있는데 한 사람은 회장이고 한 사람은 코치입니다. 이 두 사람은 실력이 아주 출중합니다. 특히 회장은 연습경기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감탄을 자아낼 만큼 멋진 자세와 플레이를 펼칩니다. 코치는 빠르고 강하기로는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 둘이 팀을 이뤄 몇 번 아마추어 테니스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그런데 번번이 예선에서 패배하고 돌아왔습니다. 한 번은 내가 직접 응원을 갔는데 그날도 1차전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때서야 나는 이 두 사람이 왜 번번이 패배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내 보기에 원인은 간단했습니다. 회장의 경우 완벽한 플레이를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고, 코치의 경우 반드시 이기고야 말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회장은 대학까지 선수 활동을 했던 사람입니다. 부상으로 이후 운동을 포기했다가 20여년 만에 아마추어 그룹과 섞여 다시 운동을 하게 된 것이지요. 출전한 경기에서 한두 개 실수를 하면 그의 몸과 플레이는 확연히 굳어갔습니다. 저 아마추어들에게 한때 선수였던 자신이 더 완벽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는 무의식이 내게 고스란히 읽힙니다. 한편 코치는 우수한 성적에 대한 열망이 강한 친구입니다. 코트에서는 오직 실력으로만 말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친구죠. 그리하여 각자 다른 이유로 두 사람은 경기에서 긴장을 극도로 고조시키고 각자 실책을 할 때마다 죄책감을 갖거나 파트너를 탓하는 마음이 드러납니다. 점수가 뒤지게 되면 개인 기량과 팀워크가 급격히 무너집니다. 결국 패배, 돌아오는 길에는 무거운 침묵이 흐릅니다.

 

그런데 말이죠, 자세히 보면 실패는 차라리 생명과 공동체를 지배하는 보편요소입니다. 나무 한 그루가 성목(成木)이 되기까지 뽑아 올린 곁가지가 얼마나 많을까요? 그 곁가지를 모두 매달고 성목이 되는 나무가 있을까요? 빛을 향해 뽑아 올린 수많은 가지들, 다른 나무의 가지와 잎이 만드는 그림자에 얼마나 많은 가지들이 시들어야 했을까요? 또 여름날의 세찬 비바람에 부러져야 했던 가지가 얼마였겠습니까? 폭설내리는 겨울에 숲에 있어 보세요. -! 가지와 줄기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어김없이 들려옵니다. 풀들도 그렇습니다. 뜯기고 캐이고 뽑히고 잘리고모색했던 것들 중 상당 부분을 잃고서야 제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 법이지요. 그렇게 부러지고 꺾이고 잘려나간 것들이 바닥을 이루고 썩으면서 숲의 바닥을 바꿉니다. 흙을 더욱 비옥하게 만들어가지요. 숲의 바닥, 그 흙이 풍부한 양분을 머금어가면서 숲이라는 공동체의 기반이 점점 더 다양성의 가능성을 향해 열려가는 것이지요.

 

사람도 그렇습니다. 넘어지며 걸음마를 익히고 뜀박질을 배우는 것이잖아요. 넘어질까 두려워 걸음을 떼지 않는 어린애가 없잖아요. ‘오늘 저 팀에게 또 배우는구나.’ 나는 늘 이런 자세로 경기를 합니다. 그래서 늘 기쁘게 이기고 기쁘게 질 수 있습니다. 진다는 것이 꼭 실패가 아니잖아요? 실패를 긍정할 때 운동도 연애도 일도 사업도 모두 좋은 삶을 채워준다고 나는 믿습니다.


허혜정 (61.♡.148.165)   17-03-14 20:47
연애도 일도 사업도 운동도 실패를 긍정해야겠습니다~ ^^ 조금 모자라게 살려고 노력해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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